시의 쾌락적 기능 - 서용택
시는 크게 쾌락적기능과 교훈적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시의 쾌락적 기능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최재서의 주장을 들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최재서는 인간의 쾌락을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관능적 쾌락(sensual pleasure), 감성적 쾌락(sensuous pleasure) 또는 미적 쾌락(aestehtic pleasure), 지적 쾌락(intellectual pleasure)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관능적 쾌락을 추구할 때 자칫 시가 저속하게 될 위험성을 띄게 된다. 지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 에로티즘은 철학의 결여로 인하여 독자의 얄팍한 관능성만을 자극하고 나쁜 욕망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능적 쾌락에만 집중하다보면 시의 감동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최재서는 『문학원론』에서 관능적인 쾌락을 하등감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반해 시각과 청각에서 오는 감각적인 쾌락을 좀 더 고급스런 미적 쾌락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관능적 쾌락은 반드시 미적쾌락과 결부되어야 한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교훈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쾌락을 전달하는 중요한 사명을 감당한다. 사실 문학이 독자들에게 쾌락을 주지 못한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에 있어서 쾌락적 기능은 곧 시의 재미이다. 이 재미의 요소는 다양한 것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최근의 시에서는 육체성에 대한 담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육체성에 대한 강조는 서정주의 ‘시’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서정주의 시들이 여전히 감동적인 이유는, 그의 시가 관능적 쾌락이나 육체성을 다루되, 그것이 미적쾌락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정주의 <화사>는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다루었지만, 고도의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지적 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미적 쾌락을 주는 훌륭한 예가 된다.
서정주의 <화사>에 나타나는 관능적 쾌락은 미적 쾌락과 결합하였기 때문에 시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마광수의 이 시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기반으로, 심심해서 짜증이 난 난폭한 왕과 그 왕에 의해 잔인하게 유린되는 여인을 다소 인위적인 방법으로 지적 조작을 가한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다른 쾌락과 연결되지 못하고 시적 긴장감을 상실하여 오히려 미적 쾌감을 저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에서 관능적 쾌락만을 추구할 때, 시는 저속하게 될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지적 통제를 받지 않는 에로티즘은 철학의 결여로 인하여 독자의 얄팍한 관능성만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결국 관능적 쾌락은, 미적인 쾌락과 결부될 때에만 시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문학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의 기능과 효용론이 무엇인가? (0) | 2009.07.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