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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기록도전기를 마치며
글로와
2007. 4. 13. 00:46
지리산중에는 도로변의 화려한 벗꽃길을 따라 이제야 봄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왕래하는 차가 한산하여 낙화한 벗꽃잎들이 길위에 수북히 쌓여 급커브 길에서
차가 미끄러질까봐 속도를 낮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7부 능선에 위치한 법계사가 흐릿한 날씨에도 산과 조화되는 색채로 생동감을
줍니다.
반바지 반소매 여름등산 채비로 나섰는데 천왕샘을 지나자 찬바람에 아직 녹지못한
얼음이 일년설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조망은 좋지않지만 흐릿한 날씨에도 우리의 기상은 발원되고 있습니다.
뒤에 아줌마들은 한겨울인데 .... 저도 추워서 걸치고 갔던 후라이를 입었지만
그래도 .....
하산길 다리밑 시원한 계곡입니다.
바다를 꿈꾸는 물들의 저항을 결코 저 큰 바위들도 막아내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산행 후 계곡물에 발 담그는 기분....
누구나 높고 큰 산을 동경할것입니다. 산행을 원한다면 마을 뒷동산 정도야 누구나 맘만 먹으면 쉽게 오를 수 있겠지만 그러나 큰 산을 오르기를 원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본인의 준비된 체력과 기타 많은 사전 준비가 갖추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 오늘은 제 나름대로는 큰 산에 해당하는 저의 연중 인생목표 설정의 한 항목인 지리산 천왕봉을 2시간 이내 주파를 목표로 하여 등산을 감행하였습니다. 전날 준비물을 미리 챙겨놓고 출발 전 체크까지 확실히 한다고 했는데 집을 떠나 10킬로나 벗어나서 그놈의 건망증 때문에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해 놓고 빠뜨려놓고 온 것입니다. 출발이 늦었기에 허둥지둥 무리해서 목표시간 5분이 지나 중산리 입구에 도착 10시 05분에 산행을 시작하여 11시 10분에 7부 능선인 로타리산장(법계사)에 도착했습니다. 이정도면 목표달성은 무난하겠구나 싶어 행군을 멈춰 서서 음료와 초콜릿을 챙겨먹고 서둘러 다시 출발하여 50여 미터 가다보니 뭔가가 허전했습니다. 점검해보니 땀 닦는 손수건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되돌아갈까 말까 망설이다 시간도 좀 여유 있는 것 같아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손수건이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바람에 날려버렸구나, 괜히 헛수고만 했다는 생각에 잠시 억울했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서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바람결에 목에서 손수건이 휘날리는 것입니다. 그놈의 건망증이 또 한번 나를 물먹인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천왕봉 등정 길은 7부 능선부터가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반은 마쳤으니 지금부터 마무리를 잘 해보자”는 다짐을 하고 발길을 옮기는데 발걸음이 예년 같질 않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이 불길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의 깔딱 고개인 천왕샘에 다다르기도 전에 한발 한발 기억될 정도로 옮겨지는 발걸음이 자존심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서는 내가 아니지 하면서도 등산하다가 처음으로 산행포기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산행포기가 저의 성격상 단순히 산행포기의 문제가 아님을 스스로 잘 알기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다그쳐 생각했습니다. "그래 다리 없는 불구자들도 잘만 살더라! 내게는 그동안 잘 단련된 두 팔이 쉬고 있잖은가!" 존심 상하고 억울하지만 오늘 기록이 생의 기록 중 가장 좋은 천왕봉 등정 기록이 될 것을 생각하며 네 발을 사용해서 뱉어낸 뜨거운 숨이 채 멀어지기도 전에 다시 낚아채 삼키며 천왕봉에 도착, 서둘러 휴대폰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12시 09분" 목표시간 2시간보다 4분이 초과되어 도착한 것입니다. 세월이 무섭다는 생각, 내가 운동부족이었다는 생각, 건망증으로 손수건 가지러 후진하게 하여 나의 만족을 허용하지 않는 산신령님의 의도 등 순간 만감이 교차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라토너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도 몇 년을 준비해서 자신하고 출전했겠지만 아마 결승점 5킬로미터 전방에서는 늘 이런 갈등과 싸워왔을 것이고 또한, 의외의 결과에 나름대로 긍정적인 수긍을 해왔기에 이어지는 생활에 굴곡 없이 살고 있지 않겠는가? 저는 오늘 산행에서 늘 체력에 관해서는 자신만만해하던 경솔함이 경망스러웠음을 알았고, 나도 이제 남들이 간다고 하던 인생의 한 언덕을 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등산도 인생도 큰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노력과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 등을 곱씹으면서 하산했습니다. 2007.4.12 천왕봉 기록도전기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