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아들에게 위문편지

글로와 2007. 9. 27. 02:18



 

듬직해져가는 내 아들에게 물러서고 싶지 않은 여름은 강풍과 천둥을 동반하고 기웃거리는 가을에 맞서보지만 비켜야 할 때라는 자연의 통념을 넘어설 수는 없는가 보다. 요 며칠 내리는 비에 말갛게 씻기어진 선선한 바람이 아파트 화단에 서있는 목련의 넓은 잎들을 휘감고 가더니 눈에 띄게 상록이 엷어지고, 이제까지 내지르지 않던 나뭇잎 부대끼는 신음을 하기 시작하는구나. 아빠(아니지 이제부터는 아버지라 부른다고 했었지)는 여기저기에서 계절이 충돌하는 소리에 잠복해있던 시심이 되살아나 뇌수를 짜며 시간들을 희롱하며 보내고 있다. 전화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어 특별이 전할 말은 없지만 오늘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낙엽 같은 대화보다는 너의 생에 책갈피로라도 남을 수 있는 나뭇잎 같은 한 장의 편지로 대신하고 싶다. 여리고 풋풋하게만 느껴졌던 지난 학생시절과는 다르게 네 피곤한 심신을 접어두고 가족들을 먼저 걱정하며 걸려오는 너와의 전화 대화에서 나는 너의 생각들마저 나날이 영글어감을 느끼면서 너의 힘든 군 생활을 걱정하기보다는 인격체로서 탐스러워지고 있는 너의 모습을 그리며 뿌듯해하고 있단다.(속도 모르고 약만 올리나? ㅋ~) 지난번 캐서린의 주소를 알려주기로 했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와 소주한잔 하느라고 약속한 네 전화를 받질 못했다. 캐서린을 생각하니 몇 년 전 한식집에서 함께 식사하면서 우리는 캐서린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쫑긋하고, 캐서린은 우리들의 서툴렀던 영어를 이해해 보려고 쫑긋해하던 모습들이 떠올라 미소를 머금게 하는구나. 아버지도 착한 캐서린이 많이 보고 싶다. 언제 입국하게 되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거라. 캐서린의 주소인데 써진 글씨가 추상적이라 내가 정확하게 옮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네가 기억을 잘 더듬어서 스펠링의 오자를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MS. K-------- ---- 3 Grapevine -------------erry, NH 03053 U.S.A E-Mail : Kathe----
----@hotmail.com Tel. : 001-1-(603) 4-----11 내가 지난 8월 하순에 일주일간 서울연수원에 들어갔었다. 그 때 집을 떠나 한 주 동안을 낮선 곳에서 숙식하며 살면서도 낮설움에 낮설어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집이란 편하게 입는 내 옷처럼 그 속에서 격식 없이 내 마음이 편한 곳, 그래서 좋다는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집 보다는 마음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하루빨리 되돌아가려 몸부림치는 그런 곳인데...... 너도 아버지가 이사를 많이 다니다보니 딱히 정감이 드는 집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집은 장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정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란다. 나는 너희들에게 그런 정감이 드는 그런 사람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은 바뀐다. 너도 아직까지는 네 의지의 날을 세우지 않아도 흐르는 시간의 궤적 속에서 당연한 것처럼 학생의 등급을 올리면서 여기까지 왔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흐르는 계절 속에서도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 성장됨이 엄청나게 다른 나무들의 구분된 모습처럼, 너의 미래의 모습도 이제부터의 너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아주 다른 모습들로 결정되어질 것이다. 휴가 때 나와 밤샘술자리를 같이하며 의미 있는 삶의 이정표를 세워보았지만 그것에 이르름에 있어서는 힘든 자기개혁이 필요함을 깨닫고 취기마저 잃어버린 시간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내 아들은 똑같이 머물며 보내는 군대생활에서도 늘 깨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품고 안이(安易)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내며 품었던 생각들을 실행하며 생활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며칠 뒤면 벌초하러 가야하고 뒤따라 추석명절을 맞이해야한다. 너 없는 빈자리에 네 동생 유리가 제 시간도 빠듯할 터인데도 아빠를 거드는 일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네 역할까지 다 해주고 있어서 큰 걱정은 없으며, 나는 그런 유리를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너 있는 곳에서는 이제 시작되는 온도 저하에도 그 강도가 달라 급격히 추워지리라 생각한다. 추위는 단련된 체력이 이겨내는 것이지 껴입는 옷이 막아주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불필요한 상념들을 떨쳐내고 냉정하게 겨울 맞을 준비하는 나무들처럼 꾸준한 체력증진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기 바란다. 이제 마무리해야겠다. 나머지 일상은 육성으로 하자꾸나. 2007.9.2 바다가 있는 남쪽에서 아버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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