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

감금

글로와 2006. 12. 26. 06:11

한 달 전에 직원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내게 섬진강에서 잡았다며 누치 세마리와

참게 한 마리를 산 채로 건내주었다.

섬진강 참게는 현지에서 사더라도 한 마리에 만원은 거뜬이 받을만큼 귀하다.

나는 그것들을 고맙게 받아 누치는 싱싱해서 회를쳐서 먹어버렸는데 참게는 당장 찌게 끓일 일이 없어서

 욕조에 물을 가득받아 살려두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참게란 놈의 생명력이 이리도 긴줄을 몰랐다.

연말이라 바빠서 이래저래 시간이 한 두 주가 지나가 버렸고 또 갑자기 서울 본사 출장갈 일까지 생겨서

 참게탕 끓일 타임을 놓쳐버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놈의 건망증때문에 늘상 화장실 가기 전까지는 참게가 거기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먹고

살다가 화장실 문을 열고서야 "아차!" 하고 후회하게 된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시간이 흐르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동거자로서 정이 들어버렸다.

욕조에 갇혀 먹이도 없이 질기게 살고 있는 아무 힘없이 보이는 이 참게가 불쌍하고 가엽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 참게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져 버리고 살려주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버렸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이놈은 아주 불쌍한척 모든 발들을 축 늘어뜨리고 천천히 흐느적거린다.

이제야 죽을려나 보다 생각하고 다음날 문을 열어보면 또 살아있다.

그러기를 한 달 이상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이놈은 죽을 기미가 전혀없다.(죽어버리면 눈 찔끔감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릴 심산이었음)

녀석은 가만히 있다가 내가 욕실에 들어가면 내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아주 가냘픈 움직임을 반복한다.

그래도 몇일간은 그러려니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게 되니 내가 마수에 걸렸는지 이놈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살려는 줘야겠는데 그녀석 고향까지는 멀고, 짬은 안나고 해서 놈에게 미안해 양심 찔리니까 아예 꼴을

 보지를 않으려고 화장실 사용도 될 수 있으면 자제하고 회사까지 참고 가서 보았다.

하지만 아침, 저녁 세면 시간만은 피할 수가 없어 괴로웠다.

될 수 있으면 욕조에서 눈을 피하면서 얼른 씻고 나와 버리는데 어제는 그러다가 넘어져 버렸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녀석을 가두고 있는지, 그녀석이 나를 가두고 있는지 헛갈린다.

분명한 현실은 저놈이 나의 생활 일부를 가두고 있다는것이다.

이제는 내가 저녀석에게 고문을 당하고 있는것이다.

처음에 아예 받지를 말던가, 정들기전에 먹어버리던가 했어야 했는데 후회만 남았다.

어제도 그녀석을 방생하려고 맘 먹었는데 날이 저물어 너무 캄캄해서 또 하루가 지나버렸다.

오늘은 아침일찍 서둘러 차를몰아 녀석이 생포된 장소로 가서 놓아주었다.

금방전까지 힘없이 축 늘어져있던 녀석이 언제 그랬냐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낭을 쳤다.

서운키는 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달려나가는 녀석에게 고마웠다.

내가 걱정을 안하도록 좋은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어서.....

다음부터는 길조심 하거래이!

또 잡히면 정말로 된장찌게에 찜질할 것이여!

 

2006.12.22 마음 가벼워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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